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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소통하는 다시뛰는 거창군의회

군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거창군의회 김향란 의원입니다.

김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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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자유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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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에서 비상을 염원하며
김향란 의원 회기 제215회
차수 제1차
의원 김향란
작성일 2016.01.29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이성복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안상용 군수권한대행을 비롯한


집행부 관계공무원 여러분!!!


 


정론직필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인 여러분!


 


반갑습니다.


 


더불어 민주당 군의원 김 향 란입니다.


 


병신년 새해가 밝은 지도 20여일 지난 시점에서 이어령 선생의 “소원시”라는 기도문을 봅니다.


 


벼랑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중략)


 


최근 10억 엔에 민족의 자존심을 넘겨버린 위안부 합의문제로 인해 이 땅에서 끌려간 20여만명 소녀들의 피눈물과 얼마전 매가박스에서 열린 영화시사회 귀향에서 주인공 은경의 눈망울이 떠오릅니다.


 


한 위안부 할머니에게 어느 기자가 쓴 편지를 되새기면서 벼랑끝에서 날개를 돋게하고자 합니다.


 


“ 내 이름은 김순99악.


1928년 6월 태어나 2010년 1월 죽었다.


이번에 외교부 차관한테 ‘당신 어느 나라 소속이’고 호통쳤던 이용수 할머니하고 같은 고향 동갑 친구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제일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처녀 공출로 마을이 뒤숭숭해도 양반집 규수들은 별 걱정 안 했다. 소작농의 딸들만 끌려갔다. ‘살려고 친일했다. 그 시절엔 모두 친일했다’고 지껄이는 이들은 친일 안 했어도 살 만했던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은 친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실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어린 상추잎을 된장에 찍어 아침밥 먹다가 댓바람에 나섰다. 마을 어른이 일본군에게 나를 넘겼다. 공장에는 가지 않고 국경 넘어 하얼빈으로 내몽골로 끌려갔다. 기차에서 울었다.


그걸 두고 ‘제 발로 갔다’고 씨부리는 놈들의 입을 다 꿰매버리고 싶다.


방에는 다다미 두 장이 있었다.


처녀들은 열셋 아니면 열넷,


기껏해야 나처럼 열여섯.


군인들은 옷을 벗지 않고 지퍼만 내렸다.


아프다고 하면 때렸다. 평일엔 1~20명이 왔다. 주말엔 3~40명이 왔다. (중략)


 


끌려간 조선 처녀가 20만 명이라지만 그조차 정확하지 않다. 병들어 죽고, 굶어 죽고,
도망치다 맞아 죽은 동무들을 수없이 보았다. 누가 얼마나 어디로 끌고 갔는지 한국도
일본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에 신고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238명이라지만, 기막힌 한을 혼자 간직하다 죽은 사람, 죽지 못해 그냥 사는 사람이 또 얼마이겠는가. 설마 아흔이 되어가는 마흔 명 남짓 생존자들이 어서 죽길 바라는 건가.


 


한번이라도 그런 일을 당하면 평생 고통스럽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네댓 나이에 몇 년씩 매일 당했던 그 지경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생각해보았는가. 그러고도 살아낸 마음에 무엇이 들었는지 짐작 가는가. 시커먼 속으로 누운 그 무덤 자리에 과연 꽃이 피는지 궁금한가. 왜 당신들끼리 밀약하여 우리 입을 틀어막는가.


 


일본군의 더러운 지퍼를 왜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닫아주는가. 미국·일본에 끌려다니다 나라 뺏겨 소녀들이 잡혀간 역사를 잊었는가. 일부러 지우고 싶은가. 나를 능멸하여 죽이고 천시하여 죽이고 수치스럽게 또 죽이는 너희. 도대체 누구인가.“


 


며칠 전 위안부로 끌려간 기막힌 한을 평생 몰래 가슴에 묻었다가 스스로 신고한 구순
의 할머니도 있습니다. 이렇듯 피맺힌 할머니들의 얘기 한번 듣지 않고 10억엔에 가해
자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위안부 강제동원문제를 다신 언급하지 않겠다고 합
의했습니다. 국정화 역사교과서문제처럼 위안부 굴욕적 합의로 유례없는 역사 논쟁이
벌어지고 갈등과 반목은 커져가고 있습니다.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역사 인식의 문제이
자 인권의 문제입니다. 가해자들의 진정어린 사죄와 배상약속을 전제한 후 피해 당사
자들의 용서가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으며 용서를 누가 대신하거나 강요해서는 더욱
안될 일입니다. 역사적 흔적을 지우려 해서도 더더욱 안될 일입니다.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피해를 입은 조선 딸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위안부 문제가 개인이나 해당국가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성과 평화, 인륜과 인류애적인 문제로 접근해야한다는 측면에서 전국 23곳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평화의 소녀상”을 거창에도 하루속히 세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새해 벽두에 벼랑끝 국가현실을 보면서 쓴 소원시 말미를 통해 벼랑끝에서 날개를 가지고비상하기를 바래봅니다.


 


“이사회가 더 이상 갈등으로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 가며 대열을 이끌어 간다는 저 신비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어느 소설의 마지막 대목처럼 지금 우리가


외치는 이 소원을 들어 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끝에서 날게 하소서.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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